로이스가 28일 한국으로 출발하고, 건희는 뮌헨으로 콩쿨 참가를 위해 30일 1학기 마지막 수업에 참가하지 못한다고 해서, 미리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덕분에 다른 친구들도 수행평가서를 한 주 미리 손에 받아 들었는데, 열심히 그리고 꼼꼼히 내용을 읽어내느라 꽁꽁 힘을 씁니다! 참 사랑스러운 모습, 여전히 제 눈에 선합니다.
한 학기 우리 친구들과 많은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면서, 제가 오히려 더 많이 배우고 깨달았던 것은, 그저 억지인 줄만 알았던 우리 친구들이 진정으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신념이 있다는 사실 입니다. 그래서 '우리 것'을 더 알고 싶어하고, 아는 만큼 자랑스러운 맘도 깊어지고, 차이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전통의 뒷받침을 궁금해 할 줄도 알고, 긴 역사를 가진 한국에 대해 몹시 뿌듯해 하는 생각이 깊은 친구들 입니다.
언젠가 일제 점령기에 "한국의 여성"으로 태어나 해방과 한국전쟁 및 급변했던 7, 80년대의 세월을 살아 낸 우리들의 할머니 인생을 그린 짧은 단막극을 함께 감상했던 적이 있었는데, 특히나 우리 반 여자 친구들이 현대의 삶과 참 많이도 달랐던 그 시절 우리 어머니, 할머니의 삶을 비교하면서 앞으로 저마다의 야무진 꿈을 꼭 실현해 내리라 마음 먹던 그 포부 넘치는 눈빛들이 눈에 선합니다. 물론 그 시절과 비교하여 성적 차별의 벽이 많이 낮아지고 얇아 진 현실에 감사할 줄도 아는 우리 친구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키와 체격에 어떻게 그런 마음의 깊이를 담았는지 놀라울 따름 입니다.
수업 중에 외운 시 한 편을 낭랑하게 낭송해 주는 친구들 목소리엔 시 보다 더 아름다운 친구들의 그런 마음이 담겨 있어 제게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었습니다. - 물론, 시간 내 다 못 외운 친구는 다음 시간 까지 꼭 외워 오겠지요!!
참, 방학 숙제는 우리 친구들이 하도 마다해서 제게 방학 숙제를 할 수 없는 이유를 정확히 글로 써서 저를 설득할 만큼의 내용이 된다면 방학 숙제 조차 없는 것으로 인정해 주기로 약속했었습니다.
이 글이 우리 친구들이 학기 중에 쓴 많은 글 들 중에 최고로 열심히 정성을 다 기울여 쓴 글 이었던 점에는 전혀 의심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글을 열심히 써서 저를 감동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일기를 최소한 일주일 간은 끊김 없이 쓰겠다는 것과, 독후감 1편은 가볍게 써 주겠노라 약속도 해 주었답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학 숙제는 친구들이 제게 편지를 써 주는 일인데, 방학 중 특별히 여행을 가게 되면 제게 멋진 엽서 같은 걸 보내 주지 않을 까 벌써부터 제 기대가 하늘을 찌릅니다.
해서, 주소를 몰라 못 보내는 친구가 없도록: Lienfeldergasse 70/2/12, 1160 Wien 도장을 찍어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