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보다 일찍 마쳐진 교무회의 덕분에 제일 먼저 교실에 도착해서 수업 준비를 하는 일이 어찌나 즐겁던지요. 책상을 서로 마주 보도록 붙여두고 제 자리엔 수업을 위해 준비했던 자료들을 되도록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펼쳐두고, 나름대로 중요한 표시를 해 두었던 부분에 눈도장을 찍어 둡니다. 평상시대로라면 재유가 제일 먼저 나타나 줄 테고, 두번 째, 세번 째는 누가 등장해 줄 지 상상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역시나 재유가 가장 먼저 교실에 들어오고 속속 나타나 줄 줄 알았던 친구들 늦장에 몸이 달아 결국 어디쯤 오고 있는지 전화도 걸어봅니다.
승이가 스키코스에서 돌아와 오늘 우리 친구 7명 모두 함께 씩씩한 애국가를 부르면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씩씩한 노래부르기는 아니었지만, 모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애국가 가사를 써내야 할 상황이고 보면 눈치 빤한 우리 친구들 애국가 1절을 그저 한 번 목청껏 부르는 것이 상책이다 싶은 모양입니다.
오늘 수업의 주제가
토의에 대해 배우는 것인데, 교과서 듣기.말하기.쓰기 48쪽의 ( )안에 빈 칸을 채워가며 토의란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가장 적절한 해결 방법을 찾는 말하기라는 개념과
주제 정하기, 의견 나누기, 의견 모으기, 의견 결정하기 등의 절차를 거치는 것과
토의를 진행할 때는
손을 들고 말할 차례를 기다린다
토의 주제와 관련된 의견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끝까지 귀 기울여 듣는다.
내 생각과 비교하며 듣는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며 말한다.
부조건 내 의견만 옳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라는 규칙에 대해 배웠습니다.
제가 계획한 대로라면 계속해서 토의가 필요한 상황에 대해 배워야 할 터였지만,
일상생활에서
친구들과 어떤 놀이를 할지 정할 때
교실에서 짝이나 앉을 자리를 정할 때
청소 당번을 정할 때
소풍 (현장 체험 학습) 장소를 정할 때
장기 자랑 계획을 세울 때
가족 외식 장소를 정할 때
교실 환경 꾸미기 계획을 세울 때
학습 상황에서
학급 신문 만들기 계획을 세울 때
미술 시간에 협동 작품을 만들 때
요리 실습 계획을 세울 때
„선생님, 이 책은 언제 배워요?“ 하며 원호가 교육과학기술부,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이 발행한 부교재 ‚한글학교 한국어‘ 책을 들어 보입니다. 행여 집중이 떨어졌을 때 환기시킬 요량으로 따로 준비한 이 책의 내용이 있었다는 걸 알기라도 했는지, 토의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자신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 부교재의 내용을 따로 생각해 둔 제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때 맞춰 질문해 주어 얼마나 신기하던지요!
자, 그렇다면! 부교재 59쪽에서 동사의 변형된 사용, 예를들어 시제의 변화에 따라 따라오는 명사 앞에서 형용사처럼 사용되는 동사의 어미가 달라지는 것을 먼저 연습했습니다.
과거에서 ㅇㅇ하였던, 현재에서 ㅇㅇ 하는, 미래에서 ㅇㅇ할
예) 어제 입었던 옷 – 지금 입는 옷 – 내일 입을 옷
재유가 예전에 불렀던 노래에 대해 부르던 노래라고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질문하여,
불렀던: 과거 어느 때 부른 적이 있는
부르던: 과거에 즐겨 불렀으나 지금은 부르지 않는
이런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다들 몇 안되는 이런 연습 문제 쯤이야! 하는 기세로 열심히도 대답하고 신이나서 답을 책의 빈칸에 채워 넣습니다.
이어서 60쪽에는 친구와 짝이 되어 서로의 취미에 대해 묻고, 이 취미를 친구가 언제부터 갖게 되었는지, 이 취미를 좋아하는 이유, 주로 언제 취미활동을 하는 지, 따로 배우고 싶은 취미가 있는지 묻고 빈 칸에 기록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다만, 두 사람씩 각각의 소그룹 활동을 하도록 친구에게 시간을 부여하기에는 우리 친구들 매우 소란스러워 질 가능성이 커서, 마주 앉은 두 사람이 먼저 시작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경청을 하면서 이 두 사람의 취미를 같이 받아 적습니다.
바로 이 연습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는 법,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법, 그리고 이 후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는 누구이고, 어떤 취미를 가진 사람이 가장 많은지, 혹시 다른 사람의 취미 중에 관심이 생긴 것을 있는 지 등을 물으며 의견을 모으는 방법에 대해 연습을 할 요량이었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차례에 따라 묻고 대답하는 절차를 여러 차례 반복하려니까 자기 차례 지나 다른 사람 차례가 모두 지날 때 까지는 인내심이 부족하겠든지, „선생님, 우선 자기 취미를 먼저 말하고 나면 훨씬 빠를 것 같아요“ 합니다. 모두 이 의견에 동의하는 지를 묻자 대부분 손을 번쩍 들어 줍니다. 애써 가르치지 않아도 토의를 진행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 친구들이 어찌나 키특하고 자랑스럽던지요!!!
거의 만장일치로 의견이 수렴되자,
원호: 나는 축구가 취미이고, 축구를 항상 좋아했었고, 이유없이 그냥 좋아하며 매일 연습을하고 바이올린과 피콜로를 앞으로 배우고 싶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일을 하고 싶어서 중국어, 스페인어, 라틴어 등을 독일어, 영어, 한국말 외에도 더 배워야 합니다.
사라: 나는 책읽기가 취미이고, 4살이 되면서 부터 이 취미를 가졌고,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아하고, 매일 책을 읽고 앞으로는 첼로가 배우고 싶습니다.
원호: 나는 농구가 취미이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농구가 재미있어서 좋아하고, 매일 연습을 하는데 앞으로 기타를 잘 치고 싶습니다.
재유: 나는 그림그리기가 취미인데 1학년 때 부터 이 취미를 가졌고 특별한 이유없이 이 취미를 좋아해서 매일 그림을 그립니다. 앞으로 뜨게질을 배우고 싶습니다.
신: 나는 쇼트트랙이 취미이고 2009년부터 시작을 했는데 앞으로 돈을 벌수도 있기 때문에 이 취미를 좋아하고, 월, 화, 목요일에 연습을 하며 앞으로는 잠수를 배우고 싶습니다.
지수: 나는 그림그리기가 취미인데 1학년때 부터 이 취미를 가졌고, 그냥 그림그리기가 좋아서 매일 그림을 그립니다. 앞으로는 요리, 뜨게질을 배우고 싶어요.
승: 나는 농구가 취미이고 학교에서 농구팀에서 뛰고 있고, 매일 운동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앞으로는 드럼을 배우고 싶어요.
선생님은 노래하는 게 취미인데 1학년 때 주일학교 교회 성가대가 있는 것을 예배시간에 알게 되어 노래를 부르는 일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그 때부터 취미가 되어, 특히 혼자 운전을 할 때 차 안에서 크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앞으로는 첼로도 배우고 싶고, 기타도 잘 쳤으면 좋겠고, 그림도 그리고 싶고….아!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각자 자신의 취미에 대해 훨씬 정중한 태도로 발표해 주었고, 다른 친구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도 주었습니다.
이렇게 진지해진 학습태도를 보이는 우리 친구들에게 한자공부는 마치 ‚참 잘했어요‘ 별표를 보태주는 일 같아서 노래 歌를 정말이지 신나게 배웠습니다.
물론, 혼자 연습이 끝나면 칠판에 나가서 새로 배운 한자와 더불어 지금까지 배웠던 모든 한자를 서로 나가서 쓰고자 예전 학습지 뒤적여 가며 얼른 칠판으로 내달을 폼세를 잡습니다.
이쯤되면 우리 친구들, 토의를 진행해서 어떤 주제라도 그리고 어떤 의견 분쟁이 있더라도 종합된 의견을 통해 결정 사항을 끌어낼 준비가 물론 갖춰진 셈입니다만,
이왕이면 앞으로의 학습을 위해서도 자유로운 의사표현, 정중한 경청을 위해 마지막 시간은 자유롭게 토론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원호가 먼저 언젠가 TV에서 본 내용을 말해 주었는데, 중국에서 꼭 하지 말아야 할 금기 9조항이랍니다.
· 중국에서 길을 물을 때는 꼭 여러 사람에게 물을 것, 차칫 한 사람에게 물으면 그저 아무렇게나 대답을 하는 중국사람 기질 상 길 찾기는 허당임.
· 중국에서는 절대 흰색으로 선물포장을 하지 말 것
· 중국사람에게서 명함을 받으면 절대 그 자리에서 넣지 말 것. 잠시 손에 들고 있다거나 들여다 본다거나 하는 관심을 표현할 것
· 중국에서 선물을 받으면 절대 그 자리에서 선물포장을 뜯지 말 것.
· 중국에서는 식사 때 코풀기 금기
· 중국에서는 밥그릇에 수저를 절대 꽂지 말 것.
· 중국에서 식사에 초대되면 절대 음식을 다 먹지 말고 조금 남길 것. 그렇지 않으면 초대한 사람이 너무 음식을 적게 준비한 것으로 오해 받을 수 있슴!
이런, 위 조항 외에도 다른 두 가지가 더 있었겠는데…, 제 기억에 남은 내용들이 여기까지 이고, 원호의 발표 내용이 이렇게 이어지니까, 신이는 서양의 식사 예법에는 식사 중 포크와 칼을 접시에 八자로 걸쳐두면 음식이 남지 않았더라도 아직 접시를 치우면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과 반대로 음식이 남았더라도 포크와 칼을 나란히 오른쪽으로 접시에 올려두면 식사가 끝난 것을 의미한다는 것, 물론 서양에서는 음식을 남기는 것이 실례라는 것도 이야기 해 줍니다.
중국, 한국,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예의와 실례가 되는 식사예절에 대해 얘기하는 데, 일본이 주제가 되자 우리 친구들 한.일관계에 대해, 그리고 중국의 1가정 1자녀법에 대해 아주 진지한 태도로 질문도하고 의견도 발표합니다.
사라가 중국에서 쌍동이가 태어나면 그 중 한 아이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묻는데, 만약 부모가 두 자녀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국가의 허가를 받지 못하면 고아원에서 양육된다고 하자 표정부터 난처해 지네요.
우리나라의 일제 치하 시기, 일본에 굴욕적인 지배를 받게 되기까지 당시 조선의 정치적인 상황, 명성황후의 시해 사건 이야기…등등의 많은 얘기가 오고 가느라 수업시간이 종료된 것도 몰랐답니다….! 뒷정리하는 내내 우리 친구들 아직도 토의 주제에 빠져 있어서, 인홍이 제게 살며시 와서는 „선생님,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다면 한국은 진작 없었겠지요?“ 묻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나라가 훨씬 오래 전에 일본치하가 되었을꺼야.“하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사뭇 진지한 표정이 되어 친구들에게 갑니다.
교실을 나오니, 다른 학년 친구들 이미 다 귀가하고 학교 전체가 텅 비었네요!
텅 빈 학교 중앙 달팽이 계단을 내려가는 우리 친구들, 뒷 모습 조차도 자랑스럽고, 스스로 알찬 수업을 만들어 주어 너무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굳이 제가 수업을 위해 준비한 대로 : 토의의 절차
주제 정하기: 사회자가 토의 주제를 소개하고 토의 규칙을 안내합니다.
의견 나누기: 사회자에게 말할 기회를 얻어 자신의 의견과 그렇게 생각한 까닭을 발표합니다.
의견 모으기: 앞서 나온 의견들의 장점과 단점을 찾아 말합니다.
의견 결정하기: 사회자가 토의내용을 종합하여 정리하고 결정된 의견을 발표합니다.
토의에 참여할 때의 태도를 평가하는 기준
손을 들고 말할 차례를 기다리는가?
토의 주제와 관련된 의견을 말하는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끝까지 귀 기울여 듣는가?
자신의 생각과 비교하며 듣는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말하는가?
무조건 내 의견만 옳다고 고집하지 않는가?
이런 평가를 하지 않아도 우리 친구들 충분히 진지하고, 뚜렷한 자기 의사가 있고, 다른 친구들의 또 다른 생각에도 매우 유연한 성숙한 6학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