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친구들은 모르는 비밀입니다.

   한글학교로 향하는 길에 인홍이 어머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인홍이네 학교는 진작 방학을 해서 아버님과 한국을 가는데, 장도를 앞에 둔 인홍이가 감기 기운이 있다구요. 해서 오늘은 부득이 집에서 쉬었다가 내일 한국 갈 준비를 시키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는 말씀을 대신 전해드리고 내심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야하는 인홍이가 걱정이 됩니다. 아빠랑 „사나이“끼리 떠나는 여행이니 참 의미있고 좋은 시간이 되겠다 저 역시 덩달아 기분이 좋았는데 어쨌든 건강하게 다녀오는 고향방문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교사회의가 요즘들어는 수업시간에 막 대어 끝이나서 바쁘게 교실로 향하게 되는데, 교실 문 앞에서 사라, 재유, 승이까지 함께 들어가다시피 만나져서 얼마나 반가왔는지요. 신이의 행방을 승이에게 묻자 대답이 시큰둥해서… „형제끼리는 지남철인가 싶어도 어느 한 부분 참 멀기만한 구석이 있지!“ 생각했지요.  원호,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었는데 오늘 함께 자리해 주어 너무 반가왔습니다. 조모님께서 원호네 방문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셔서 원호는 원래 자리로 복귀한 셈인데, 한동안 할머님과 함께 했던 시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겠고, 또 가시고 난 빈자리가 서운하게 남았겠지요. 우리는 원호가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 주어서 무조건 반가왔습니다!! 신이까지 착석하는데는 그렇게 오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는데, 지수가 조금 오래 걸리는 것 같아 기다리는 시간 우리 친구들에게 6월 남아 있는 일정이랑 개학 후 학예회를 비롯해서 우리가 치뤄야 (!) 할 행사들에 대해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딱히 학예회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이었다는 반응이 아닌 터라, 각자 학예회 때 했으면 좋은 내용을 생각해서 진지하게 회의를 거치겠다고 숙제아닌 숙제를 내 주었는데, 친구들 반응이 제법 진지해서 아마 가을 학예회 때 우리 반 발표를 기대해도 좋을 듯 하겠습니다! 지수까지 다 자리 잡고 우리 말에서 흔히 틀리게 발음하는 낱말들을 배웠습니다.

말,듣,쓰 164 – 165쪽

생선을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렸다.

이를 깨끗이 닦아라.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다가 왔다. 

 

흔히 ㄱ이 ㄲ으로, ㅈ이 ㅉ으로 흔히 된발음을 더 자주 사용하는데, 우리 친구들 대부분이 가시 대신 까시, 닦아라 대신 딲아라, 검은 대신 껌은, 그 밖에도 좁다 대신 쫍다, 종이를 길게 잘라라 대신 짤라라, 조그만 물건 대신 쪼그만 물건으로 발음하고 그 표현이 맞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물론 받침과 다음 자의 첫 자음이 부딛혀서 „자음접변“이 일어나는 경우를 쉽게 구별하지 못해서 다른 예를 드는 친구도 있었지만, 우리 말이 실지로 많이 된소리를 사용하게 되어 실제 맞춤법에 맞게 사용하기 어려운,  아주 „쉬운“ 낱말들이 있었다는 것을 새롭게 배웠습니다.

 

그리고는 발표를 하는 상황에서 또는 말을 할 때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는데  (말, 듣, 쓰 166 – 167 쪽) 우리 친구들 어느 누구도 말하는 데 있어 불안을 느끼는 친구가 없네요!!! 남학생들은 말할 때 불안한 건 여자애들이나 그렇다고 하고, 우리 여자 친구들 학교에서 주제를 발표해도, 친구들 앞에서 말을 해도 불안하지는 않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소위 요즈음 아이들이 우리 세대에 비해 „끼“가 많은 까닭일지, 아니면 우리 친구들은 아무래도 토의에 익숙한 서양의 교육에 익숙해서 일지, 정확한 판단은 어렵지만 수업시간 내내 자신의 의견을 잘 발표해 주는 친구들에게서 이런 „말하기 불안“은 아닌게 아니라 지금 껏 관찰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각자 자신이 갖고 있는 전혀 다른 불안 아니, 불안이라기 보다 두려움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 해 주는 것으로 역시나 우리 친구들은 발표하는 데 말하기 불안이 없다는 걸 정확히 확인 시켜 주어서 저 개인적으로는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벌써 3교시가 되어 학기말 시험을 치어야 하는데, 우리 친구들 시험을 보면 시간이 빨리 지나서 되레 즐겁다네요? 수줍거나 불안해서 자기표현을 못하는 친구가 우리 반엔 없다고 해도 지나친 과언이 절대 아니겠지요?

 

한동안 수업에 참가하지 못했던 원호까지 시험지 빈 면을 꼬박 채우느라 바쁘게 지난 시간, 시험결과의 내용에 관계없이 한 학기 내내 애써준 친구들에게 참 고마운 맘을 전하고 싶습니다. 더 많은 내용으로 알차게 가르치고 실력향상에 보탬이 되는 방법을 찾아 주었어야 할 제 몫의 평가를 제외하면 우리 친구 모두 나름대로 성실한 태도로 각자의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욕심으로 어떤 친구에게서는 말하기에 비해 훨씬 실력차이가 나는 쓰기, 읽기 영역에 대해 더 많은 연습을 강요 비슷하게 요구할 수도 있었겠다 싶지만, 우리 친구들에게 스스로 하고 싶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제게 더 중요한 역할이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이든 좋아서 하는 일을 제일 잘 할 수 있다고, 우리 친구들 한글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각자에게 참 재미있고 좋은 일이었으면…소망합니다.

 

100점 받는 게 목표도 아니었을텐데, 시간이 다 지나도록 꽁꽁 애를 써가면서 뭐라도 한 자 씩 더 적어내는 친구들 모습이 참 기특하고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험까지 잘 마쳤습니다.

 

마지막 시간엔 듣, 말, 쓰 170 - 173쪽에 걸쳐 글씨를 바르게 쓰는 연습을 했습니다.

띄어쓰기 및 자, 모음 글씨 쓰는 순서까지 처음 한글을 배울 때 처럼 예쁜 글씨를 쓰는 연습을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름대로의 글씨에 익숙해 져서 틀린 부분도 수정이 되지 않고 계속 버릇대로 쓰는 것을 올바르게 쓸 수 있도록 연습을 하자고 하니 모두들 4쪽에 걸쳐 긴 낱말과 글을 매우 진지하게 잘 써줍니다.

한글을 쓰면서 승이 하는 말이, 한글은 한 자, 한 자 끊어져서 필기체로 알파벳을 쓰는 것 보다 훨씬 팔에 힘이 많이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쓰는 속도도 이어지지 않아서 알파벳에 비해 훨씬 느리다고 하네요. 다른 친구들 역시 한 음 씩 떨어지는 한글은 쓰면서도 언제 띄어쓰기 해야 하는 지 독일어 단어 보다 불분명하다고 합니다.

„아, 그럴 수 있겠구나!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한 수 배웠네!“ 하니까 우리 친구들 얼마나 행복해 하는 지요! „선생님, 우리도 선생님께 가르쳐 줄 수 있어요!“

 

   제가 한글학교의 한 학기를 거의 마치면서 우리 친구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그래서 우리 친구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다 표현할 수 없어서 안타깝다는 걸 우리 친구들은 모르겠지요. 제게 아주 소중한 비밀이 생겼습니다.